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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도 기록합니다 – 나의 덕질 아카이브

by 시골썬 2025. 6. 10.

취향도 기록합니다 – 나의 덕질 아카이브

 살다 보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건 음악일 수도 있고, 영화 속 한 장면일 수도 있으며, 책의 한 문장이나 어느 계절의 향기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취향’이라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덕질’이라 부릅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윤활유 같은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로까지 이어질 때, 나의 애정은 한층 더 선명한 존재가 됩니다. 덕질은 감정이고, 기록은 그 감정의 아카이브입니다.

 

취향도 기록합니다 – 나의 덕질 아카이브
취향도 기록합니다 – 나의 덕질 아카이브

취향을 기록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두근거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꾸만 그 사람의 이름을 써보고 싶어집니다. 노래 제목을 적고, 인터뷰의 한 문장을 받아적고, 콘서트 날짜와 후기까지 공책에 정리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모음집일 뿐이었지만, 페이지가 채워질수록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밀도가 커져갑니다. 나만의 작은 아카이브, 말하자면 덕질의 다이어리입니다.

 어떤 날은 방금 본 드라마의 대사를 적고, 어떤 날은 새로 산 포토카드에 맞춰 다꾸를 합니다. 그렇게 쓰고 붙이고 꾸미는 모든 과정이 곧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오직 좋아서 하는 일. 그 안에는 계산도 없고 목적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기록 속에 있는 나는 늘 설레고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덕질을 기록하는 습관은 시간을 더욱 천천히 흐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이 발매된 날을 중심으로 한 달 치 다이어리를 꾸미면, 그 한 달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한 편의 이야기처럼 남습니다. 그때 들었던 노래, 함께 본 사람, 그 주에 있었던 나의 감정까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시간의 문서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억보다 선명한 기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도 그 기록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릴 때, 일상에 지칠 때, 문득 꺼낸 덕질 노트를 보며 다시 웃게 됩니다. 과거의 내가 쓴 짧은 문장 하나, 붙여둔 사진 하나가 그날의 감정을 그대로 되살립니다. 그런 면에서 덕질의 기록은 단순한 취향의 흔적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주는 정서적 자산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팬심은 삶을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덕질은 단지 취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에 동력을 제공하는 감정의 원천입니다. 매일매일이 반복되는 육아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 어떤 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감정은 기꺼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 감정을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팬심을 남기는 것을 넘어 내 안의 생기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새벽에 혼자 남은 시간, 핸드폰 메모장에 오늘 공개된 인터뷰의 구절을 옮겨 적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포토카드를 정리합니다. 그 조용하고 사적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기록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팬으로서의 나는 엄마로서의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사람 안에 있는 여러 역할 중 하나일 뿐이며, 그 다면적인 나를 기록할 수 있다는 건 오히려 큰 행운입니다.

 덕질을 하며 느끼는 설렘과 감동, 슬픔과 환희는 결국 ‘감정’이라는 본질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기록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이 감정을 오래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서. 누군가는 메모로, 누군가는 블로그로, 또 다른 누군가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리일스로 덕질을 기록합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기쁨을 손으로 만져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손으로 쓰고, 보고, 남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애정을 담아내는 일이니까요.

 또한, 덕질의 기록은 나만의 일기를 넘어, 때로는 타인과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가 정리한 플레이리스트나 굿즈 정리법을 공유했을 때, 누군가 “정말 도움 되었어요”라고 말해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덕질은 본래 혼자 시작하지만, 기록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알아보고 응원하게 됩니다. 그렇게 덕질은 기록을 타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웃고, 함께 좋아할 수 있게 됩니다.

덕질의 기록은 결국 ‘나’를 위한 선물입니다

 덕질의 기록을 돌아보는 일은, 곧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일입니다. 이 그룹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나, 첫 콘서트에 가던 날의 떨림, 팬레터를 쓰던 마음. 모두 그 순간을 기록해두었기에 지금 다시 꺼내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흐릿해지지만, 기록은 그때의 나를 꽤 생생하게 데려옵니다. 글자 하나하나에 묻어 있는 감정의 결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나를 다시 감싸줍니다.

 기록은 소중한 감정을 ‘물성’으로 남겨주는 일입니다. 덕질 노트, 스티커로 꾸민 파일, 캘린더 앱 속 정리된 발매 일정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감정을 저장한 상자입니다. 그리고 그 상자는 오직 나만이 열 수 있는 보물 상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세상의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의 편린입니다.

 덕질의 기록은 때로 위로가 됩니다. 우울한 날, 무기력한 날, 삶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에도 예전의 기록을 들춰보면 그 시절의 설렘이 다시 피어납니다. “이때는 이렇게 웃고 있었구나.” “이런 문장을 좋아했었네.” 그런 발견은 나를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내 감정에 귀 기울이며 살아온 삶이, 이 기록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고 위로가 됩니다.

취향을 기록하는 삶은 더욱 단단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가는 감정을 만납니다. 그 감정이 크든 작든, 그것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두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기록’일 것입니다. 특히 덕질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에 대한 기록은, 단순히 나열이 아니라 애정의 구조화입니다. 그 안에는 나의 성격, 취향, 감정의 결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그 순간의 나를 명확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취향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변하지 않는 중심으로 남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일이자,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삶 속에서, 일상을 버텨내는 바쁜 하루 속에서도, 내 취향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작고 소중한 노력입니다. 

 기록은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힘입니다. 오늘의 나를, 좋아하는 것들을, 그 순간의 기쁨을 포착해두는 일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덕질을 기록하는 모든 순간은 결국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자,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전히, 나의 덕질을 조용히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