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 도구들에 대하여― 다이어리, 노트, 그리고 앱까지
삶을 살아가며 저는 여러 번 같은 다짐을 했습니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그러나 기억은 때로 너무도 쉽게 흐려지고, 일상의 소음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하루를 되짚기 위한 일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록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나를 이해하는 수단이자 삶을 설계하는 도구로 진화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은 기록 도구를 사용해보았고, 오늘 이 글을 통해 그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아날로그 도구: 손끝에서 피어나는 기억의 결
아날로그 기록은 늘 저의 기록 여정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종이와 펜의 질감은 지금도 여전히 제게 가장 익숙한 방식이며, 깊은 몰입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는 6공 다이어리입니다. 날짜가 인쇄되어 있지 않아 원하는 방식대로 페이지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오늘은 하루 일정과 감정을 나란히 기록하고, 어떤 날은 읽은 책의 문장을 필사하거나 짧은 그림을 그려넣기도 합니다. 그날의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자유로운 도구인 것 같습니다.
또한, 포켓형 노트도 자주 활용합니다. 주머니나 작은 가방에 쏙 들어가는 이 노트는 주로 이동 중 떠오르는 단상이나 문장을 기록하는 데에 사용합니다. 무게도 가볍고 부담이 없어, 손이 가장 자주 가는 아날로그 도구 중 하나랍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단연코 정서적 밀도에 있습니다. 손글씨에는 그날의 기분이 묻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글씨의 크기, 속도, 획의 강약까지 모든 것이 기록의 일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디지털 방식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차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검색이 불가능하고 보관에 공간이 필요하다는 단점도 존재해, 물리적인 제약이 때때로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기록과 꾸미기의 경계에서: 다꾸라는 또 하나의 언어
최근 몇 년 사이, 기록 문화의 한 갈래로 '다꾸', 즉 다이어리 꾸미기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단순한 글쓰기에서 나아가, 스티커나 마스킹테이프, 색연필, 사진, 도장 등을 활용해 다이어리를 꾸미는 이 문화는 기록을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시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림 솜씨가 없는데..."라는 이유로 망설였지만, 다꾸는 완성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더 풍부하게 감각화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그 세계로 스며들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카페에 들렀던 날에는 영수증을 오려 붙이고, 테이블 위의 잔잔한 무늬를 따라 손으로 스케치해보기도 합니다. 여행 중 찍은 폴라로이드를 한 귀퉁이에 붙이거나, 그날 들은 음악의 가사를 옮겨 적는 일도 나름의 다꾸입니다. 이런 꾸미기 요소들은 단순히 '예쁜 다이어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 감정, 온도까지 한 페이지에 녹여내는 장치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다꾸는 기록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춰즙니다. 하얀 페이지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두려움보다, '꾸며도 괜찮다'는 자유로움이 먼저 다가와 손이 즐거우니 마음도 따라갑니다. 꾸미는 도중 자연스럽게 글이 써지고, 글을 쓰다 보면 다시 꾸미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다이어리는 글과 그림, 색과 질감이 어우러진 나만의 아카이브로 변모해 있습니다.
디지털 도구: 정보를 담는 두 번째 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도 자연스럽게 디지털 도구의 편의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업무와 일상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자, 기록도 더 빠르고 유연한 방식을 필요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Notion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Notion은 단순한 메모 앱을 넘어, 나만의 정보 아카이브로 발전했습니다. 블로그 아이디어, 프로젝트 일정, 독서 노트, 여행 계획 등 다양한 성격의 기록들을 하나의 공간에서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용합니다. 더불어, 구글 드라이브, 캘린더 등 다양한 앱과 연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보다 즉각적인 기록이 필요할 때는 Google Keep을 사용합니다. 이 앱은 가볍고 반응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짧은 문장을 기록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성 메모 기능도 있어 운전 중이나 손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쓰입니다.
디지털 도구의 가장 큰 강점은 검색성과 접근성입니다.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몇 년 전의 메모도 바로 찾을 수 있고,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 등 다양한 기기에서 동기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정서적인 밀도는 아날로그에 미치지 못하며, 감정을 기록하는 데에는 어딘가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지도 했습니다.
하이브리드 방식: 기록의 균형을 찾아서
어느 시점부터 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기록법'입니다.
가령, 하루의 감정이나 일상적인 풍경은 여전히 종이 다이어리에 기록하며, 손글씨를 쓰면서 그날을 되짚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 업무 계획이나 창작 아이디어, 자료 정리는 Notion에 맡깁니다. 다이어리에 적은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거나, 일부 텍스트를 디지털로 옮겨 검색 가능하게 정리하기도 합니다.
이 방식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기억을 구조화하고 응용하는 데에 적합합니다. 일기의 감정은 콘텐츠 기획의 배경이 되고, 메모의 파편은 하나의 글로 발전합니다. 기록이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방식은 다소 복잡할 수 있습니다. 도구가 많아질수록 관리가 어려워지고,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나름의 규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이 균형이 기록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도구보다 중요한 것
기록은 선택입니다. 동시에, 기록은 태도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남기느냐는 각자의 삶의 방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구는 그 기록의 성격을 결정짓는 요소일 뿐, 본질은 여전히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기록 도구를 시도할 것입니다. 변화하는 삶의 형태에 따라, 필요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기록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다듬고, 이해하는 일은 변함없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기록은 단지 과거를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정표고 그 길 위에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도구를 찾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